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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님과/스타강사/유명강사

국민엄마 전원주 -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파인드강사 2013. 2. 7. 15:29

 

 

강사섭외/기업특강/명사섭외/유명인 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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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영화배우)

경력

2012.03 지구촌공생회 홍보대사
2009.04 강서구 홍보대사
1972 TBC 탤런트
데뷔1963년 동아방송 1기 공채 성우

수상

1998 제35회 저축의 날 국민포장
1998 대한민국광고대상 특별상

 

 

 

 

 

 

 

 

 

 

 

 

*이 외에도 26여건의 방송활동

 

전원주 "웃음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30년 동안 무명의 생활을 해왔습니다. 참 설움도 많았습니다. 키 150센티미터의 작은 키, 카메라를 확 당길만한 미모는 아니라서주연급 배우도 못했습니다. 오늘은 캐스팅될까 방송국 자리 지키고 연출자에게 눈도장 찍으러 출근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치는 날의 연속!

오랜 무명 이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기다려온 인내의 덕택이었고 특유의 너털웃음 덕택이기도 했습니다. 어둡던 얼굴 표정에서 밝은 웃음을 띄우자 웃음이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오랜 무명생활은 절약만이 잘 살 수 있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했고 재테크의 고수로 수많은 기업에 섭외 1순위로 오르며 단골 강연자로 인기도 높습니다.

수더분한 연기자, 프로답게 일하는 연기자, 탤런트 전원주 씨를 3월 20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겁나는 것이 돈 쓰는 일

▶ 분홍색 투피스가 너무 화사하게 잘 어울리세요.

나이를 먹으니까 어두운 색보다는 환한 색이 좋더라고요. 제가 옷 입는 게 시원찮다고 부자 친구가 사준 옷이에요.

▶ 전원주 씨도 부자시잖아요.

저는 쓸 줄을 모르잖아요. (웃음)

▶ 제일 비싼 옷은 얼마에 주고 사 보셨어요?

요즘은 몇 십만 원짜리 옷은 사 입어 봤어요. 몇 백만 원짜리는 못 사 입고 한 백만 원짜리 50% 세일하면 살까....그전에 한번은 부산에 갔는데 시간이 남아서 파마를 하려고 택시기사의 안내를 받았어요. 그런데 미장원이 로마의 궁전처럼 너무 크고 좋은 거예요. 비쌀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종업원을 불러서 파마 값을 물어봤더니 동네에서 해주는 가격에 해드린다고 들어오라고 해서 한 적이 있어요. 돈도 정말 써 본 사람이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생활을 많이 하다 보니까 벌써 돈을 쓰려면 겁부터 나고 이렇게 써도 되나 고민하다가 못쓰게 되고, 어디 밥 먹으러 가서도 오천 원이 넘어가면 못 들어가요.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남편이 죽을 때 돈 들고 가는 것 아니라고 그래도 그렇게 살아 버릇을 해서 그런지 잘 안되더라고요.

▶ 남편 분도 잘 안 쓰세요?

그분은 너무 잘 써서 걱정이죠. (웃음) 저하고는 완전히 반대예요. 우리 집 앞에 큰 일식집이 생겼는데 비쌀 것 같아서 못 들어갔는데 병원에서 제가 복부비만이라고 기름기를 먹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식집 앞을 서성이는데 문 앞에 ‘회덮밥 만원’이 쓰여 있어서 정말 큰맘 먹고 들어갔더니 누가 와있다고 안내를 해서 문을 열어보니 큰 쟁반만한 접시에 회를 있는 대로 싸놓고 와인 마시면서 남편이 친구하고 즐기고 있더라고요. 남편이 놀라서 눈이 콩알만큼 튀어나오더니 이거 자기가 내는 게 아니라 친구가 내는 거라고... (웃음)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의 차이 이거구나 하면서 이러면 안 되겠다 생각을 했죠.

▶ 전원주 씨와 제일 친한 사미자 씨도 굉장히 돈 못 쓰는 분이거든요.

사미자 씨나 나나 어렵게 시작했기 때문에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해요. 사미자씨 결혼하고 집을 가봤더니 미아리 공동묘지를 헌 곳에 오만 원짜리 월세를 사는데 아이가 갑자기 데어서 알코올로 닦는데 씻기질 못해서 때가 국숫발처럼 나오는 거예요. (웃음)

▶ 사미자 씨가 들으면 왜 내 욕해 하실 것 같은데 (웃음) 한 번은 사미자씨 남편분이 사업으로 너무 속상하게 하니까 나도 한 번 쓰자는 생각에 50만 원을 들고나갔는데 명동을 두세 바퀴 돌고 그냥 들어오셨데요. 그 돈을 쓸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한번 그렇게 버릇이 되니까 못 고쳐요. 돈을 쓰려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일단은 겁부터 나고 지금도 가까운 거리는 가끔 택시를 타는데 백 원 올라가는 게 왜 그렇게 빨리 올라가는지 속 끓이는 것보다 걷는 게 났더라고요.

◇ 영원한 이등생은 없다

▶ 지금도 직접 운전하세요?

직접 운전하지 기사 없어요. 장거리나 지방에 갈 때만 한 번씩 쓰고, 매니저도 없어서 항상 뒤죽박죽이죠.

▶ 그렇게 강의 요청이 많다면서요?

좋은 배역은 안 오고 강의 제의만 봇물처럼 쏟아져요. ‘영원한 이등 인생이 없다는 식으로 제가 힘들게 연예계에서 몇 십 년을 밑바닥 생활을 참고 하다 보니까 햇빛이 조금 비췄다, 여러분도 열심히 살아라.’ 이거밖에는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이야기가 좋은 가 봐요.

한번은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제주도에 강의를 갔는데 전국의 기라성 같은 CEO들이 모여 있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강사진들이 에피소드를 말씀하시는데 저하고는 차원이 틀려요. 저는 체계도 없는 강의를 하는데 하늘이 다 노랗더라고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이 강의를 하고 내려왔는데 풍림산업 회장님이 다른 사람 강의는 어려워서 못 알아듣겠고 제 강의만 귀에 들어왔다고 회사에 초청을 해주셨어요.

▶ 목소리가 정말 좋으신데 어려서부터 그렇게 목소리가 좋으셨어요?

음성만은 끝내줬어요. 초등학교 때는 독창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가수가 꿈이어서 음대에 가려고 했더니 어머님이 거울을 보라면서 타박을 주셨어요. 자기 자식이지만 정확히 아시는 거죠. 예쁜 여자는 노래를 조금 못해도 예뻐 보이고 흉측하게 생긴 여자는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빨리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꿈을 접었죠.

제가 순진하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문학소녀였어요.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1학년 때 중앙대학교와 함께 문학의 밤을 했는데 말을 안 하고 조용히 있다가 제 차례에 조용히 나가서 읽었어요. 사람이 제 눈에 안경이라고 중대 학생이 따라오더라고요. 집 앞까지 따라왔는데 어머님한테 혼나고 돌아갔죠.

▶ 대학교 졸업하시고 성우로 들어가신 거예요?

제일 처음 출발이 CBS 성우 5기로 출발했어요. 금요일에 한 번 나가는 ‘이것이 인생이다.’ 그거 하나에 안 뽑히면 한 달간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힘든 시절이 제일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숙대 방송반에 있으면서 멘트도 하고 웬만큼 방송 일에 익숙했었죠.

◇ 목소리 공주의 콩쥐 생활

▶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셨고 몇 남매셨어요?

아버님과 어머님이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상을 하셨는데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개성상인 유명하잖아요. 무일푼으로 넘어오셔서 돈을 많이 버셨어요. 제가 육 남매의 장녀인데 어려서부터 동생들 거두어 먹이고 살림하면서 생활이 그대로 묻어나니까 30년을 가정부만 했나 봐요. (웃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2때까지 3년 동안 학교도 못 다니고 동생들 보살피고 살림을 했어요. 그리고는 중학교로 월반을 해서 공부를 했지요.

▶ 어머님이 무서우셨어요?

지금도 남편은 어머님을 제일 무섭고 사나운 ‘인왕산 호랑이’라고 하세요. 매도 많이 맞고, 꼬집히고, 머리를 잡아 뜯기고 아예 때리는 방이 따로 있었어요. 6시 넘어서 들어와도, 남자가 따라와도, 제대로 안 해도, 동생과 다퉈도... 무조건 잘 못하면 맞았어요. 하도 때리셔서 계모인 줄 알았어요. (웃음)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어머니 성격이 저도 나오더라고요. 많이 참고 기다리고 강한 것은 영락없이 어머님을 닮았어요. 아버님은 내성적이시고 목소리도 작아서 우리 집은 완전히 반대였어요. 목소리도 어머님이 더 크고...

▶ 키는 어머님을 닮았나요?

키는 어머님을 닮았는데 고생을 많이 해서 더 자라지 못한 것 같아요. 하도 물지게를 많이 져서요. 옛날에는 깡 보리밥만 먹고, 그 무거운 함석 통에 물을 지고 완전히 지르박 스텝으로 걸었어요. 다른 형제들은 다 커요. 어머니도 나처럼 작지는 않아요. 공식적으로는 키가 150㎝라고 하는데 사실 조금 안 되더라고요. (웃음)

◇ 투명인간으로 지낸 무명시절의 설움

 

 

▶ 옛날에는 성우가 인기였었죠?

TV가 없었으니까 성우가 하늘이었죠. 제가 음성이 예뻐서 한 번에 붙었어요. 최지숙 씨, 김영옥 씨가 동기였고 라디오드라마가 최고의 인기였었죠. 바로 위 선배로는 고은정씨가 주인공 하시고 그러셨죠.

▶ 주인공도 하셨어요?

주인공도 하고 해설도 하고, 멜로도 좀 했고, 음성이 예뻐서요. 그런데 일이 너무 없어서 TBC에 이보라 연출 선생님의 추천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키는 작고, 매일 구석에서 가정부역할을 시키는데 사람이 배역에 따라서 대우도 달라지고 출연료도 틀려요. 얼굴도 많이 안 나가고 이름도 안 나가고 정말 열심히 해도 편집에서 잘리면 출연료도 못 받았어요.

대접을 못 받는 게 제일 슬프고, 후배고 동료고 인사도 안 하고 밥도 자기네들끼리 먹고, 미용사들도 해주지도 않고... 서러웠죠. 동네에서 ‘불 파마’라고 머리가 탈 때까지 하는 파마를 하고 옷도 동대문, 남대문에서 사 입으면서 누가 봐도 가정부인 역할만 했죠. 한번은 제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누가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생전 잊혀 지지가 않아요. 체면 불구하고 양파찌꺼기까지 다 먹었는데 누군지 기억은 나질 않아요.

▶ 무명시절이야기를 너무 솔직하게 해주시고 계신데 그런 시절을 오래 겪으셨죠?

30년을 무명시절로 보냈죠. 그래도 연예인인데 길가다 사람들이 못 알아봐 주는 게 제일 속상하더라고요. 한번은 우리 아이 입학식에 갔는데 아이들이 ‘식모 간다.’ 면서 놀리니까 아들이 도망가더라고요. 끝나고 교문 앞에서 아이를 아무리 기다려도 못 찾아서 집으로 왔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는 ‘엄마 왜 왔어’ 하면서 울더라고요. 어린 가슴을 멍들게 하면서까지 이런 역할을 해야 하나 싶어서 그만두려고 고민했었어요.

배운 것도 억울하고 이 세계에서 이런 대접 받으면서 사는 것도 속상한데 연출자들이 이번 한 번만 가정부역할 해주면 다음에 더 좋은 역할 주겠다고 하면 그 말을 믿고 계속 하게 돼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제 모습이 가정부로 보이고 고은정 선배가 너무 안타까우니까 옷을 제대로 입으라고 하는데 돈도 없고 색상도 못 맞췄어요. 나를 가꾸고 격상을 시켜야 상대방도 높여주는데 그걸 몰랐던 것 같아요.

빌려서라도 꾸몄어야 하나 싶다가도 이날까지 십 원 한 장 빌려 본적이 없어요. 없으면 없는 데로 살았어요. 차비가 없으면 걸어가고, 굶기도 많이 하고, 냉방에서도 자고요. 성우 할 때 꼭 자장면을 시켜먹는 사람이 있었는데 젓가락 들고 기다리다가 얻어먹고 그랬어요.

그때 우리 어머님이 돈도 있으셨는데 제가 좋아서 들어간 길이고, 제가 좋아서 결혼한 거니까 제 힘으로 살라고 냉정하게 도와주지도 않으셨어요.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하니까 그 독한 어머니가 집을 하나 사주시더라고요. 조그만 상점이 딸린 집인데 세를 놓으면 생활이 되니까 굉장히 심사숙고해서 사주셨어요. 그때서야 어렸을 적 서러움도 사라지고 어머님의 자식사랑을 이해하게 되었죠.

◇ 웃음으로 인생역전! 절약으로 노후준비 완성!

 

 

 

▶ 언제부터 무명시절이 바뀌게 되었나요?

웃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전에는 내성적인데다가 구석에서 혼자 중얼거린다고 별명도 ‘전쭝얼’ 이었어요. 그러다 시장에 나갔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장사를 잘하시고 전대에서 돈을 꺼내시면서 화통하게 웃으시는데 저게 바로 사는 거구나 싶은 게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요. 그래서 거울 보면서 밤마다 웃는 연습을 했고 어느 날 웃음보가 터져서 연출자들이 깜짝 놀라고 시끄러운 배역이 나와서 기회가 오더라고요.

운이 좋게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7년 동안 하면서 많이 웃고 알려지게 됐죠. 그렇게 웃음과 여유가 생기니까 운명도 바뀌고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 그동안 고생했으니 영화를 누리라고 하는 것처럼 일이 쏟아졌어요. 그게 바로 활력소더라고요. 내 가슴에 밤낮 비만 오고 먹구름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햇빛이 비치는구나 싶어서 기도 살고 이런 자리까지도 나오게 되었죠. (웃음)

▶ 그런 어려운 와중에도 돈을 모으셨어요.

사실 연예인들이 항상 돈이 많이 생기는 줄 알고 펑펑 쓰시다가 노년에 일없고 힘없어지면 굉장히 어려워지잖아요. 한번은 모 방송국에 연세 드신 가수 분이 나오셨는데 시외버스 두 번을 갈아타고 오다가 지각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는 노년대비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지요. 돈의 소중함을 깨닫고 바쁘게 일할 때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모은 거죠.

고정수입은 아닌데 어떤 식으로 모으세요?

저는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은행에 가요. 저축은 빨리하고, 찾을 때는 몇 번 생각하고 최대한 버티다 겨우 찾아서 써요. 지갑에는 몇 만 원 정도 들고 다니고 카드는 하나 있는데 주유할 때와 옛날에 많이 얻어먹었으니까 베풀 때 쓰죠. 밥은 주로 방송국의 2,500원짜리를 먹는데 요즘도 오천 원짜리 이상은 안 먹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쓰는 재미도 멋있지만 모으는 재미도 근사하거든요. 성격의 차이겠지만 하나하나 모이는 것을 보면 저는 즐겁더라고요.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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