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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하 앵커 -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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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하 (앵커, 전 아나운서)
경력
2008~2011.11 MBC 보도국 앵커
2007 MBC 보도국 문화팀 기자
2007.11 여성가족부 홍보대사
MBC 보도국 사회2부 기자
MBC 보도국 국제부 기자
MBC 보도국 경제부 기자
1997 MBC 아나운서
수상
2009 제2회 더 우먼 오브 타임 어워드
올해의 여성상
2008 여성신문 2030 여성 희망리더 20인
2003 제16회 기독교 문화대상 방송부문상
2002 한국아나운서대상 앵커상
우리나라 방송역사 최초의 여성 단독 앵커, 김주하!
우리나라 대표 여성 앵커 김주하의 다큐 에세이,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2006년, 출산을 이유로 5년간 진행해온 MBC <뉴스데스크>를 떠난 여성 앵커가 있었다. 그리고 2007년, 그녀는 우리나라 방송역사에서 최초로 여성 단독 앵커가 되어 MBC <뉴스테스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녀가 바로 우리나라 대표 여성 앵커 '김주하'다.
[커리어넷] 앵커님의 어린 시절 꿈은 어떤 것이었나요? 앵커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주하]한 가지 꿈만 가졌던 건 아니에요. 동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수의사가 되거나 농장을 운영하고 싶었고, 제복이 멋있게 보여서 여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제가 수의사를 꿈꾼다니까 주변 분들이 동물 말고 사람도 살리는 꿈은 어떠냐고 하셔서 의사를 생각해 본 적도 있고요. 앵커가 되고 싶다는 꿈은 고등학교 때 생겼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신문반에서 기자를 했었는데,신문반 선생님께서 신문 기사나 TV 뉴스를 자주 보고 기사 쓰는 법을 익히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신문이나 뉴스를 계속 접하다 보니 처음엔 기자를 꿈꾸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TV 뉴스에 반복해서 나오는 앵커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지요. 특별한 계기보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저절로 앵커에 대한 꿈이 키워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난 앵커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신문반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방송을 보다가 어느 순간 앵커라는 직업에 매료된 거죠.
[커리어넷] 그럼 학창 시절에 신문반 또는 방송반 활동을 하는 것이 방송국 기자나 아나운서, 앵커가 되는 데 도움이 되나요?
[김주하]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방송반이나 신문반 활동을 꼭 해야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앵커가 되겠다는 꿈이 명확해졌을 무렵에 대학에서 교수님과 처음 면담하면서 방송반 활동을 하는 것이 제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지 여쭤 본 적이 있었습니다. 교수님 눈에는 학생들이 방송반 일로 매번 수업에 빠지는 것이 좋지 않아 보이셨는지,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난 학창 시절에 적어도 나한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전 교수님 말씀에 따라 방송반에 들어가지 않았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입니다. 내가 너무 하고 싶으면 당연히 들어가야겠지요.
한 가지 덧붙여 말하면, 저희 회사 선배들을 보면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방송국에서 제2외국어를 선호하다 보니 언어 전공자가 많은 편입니다.
[커리어넷] 고등학교 때부터 앵커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워오셨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것이 가장 힘들었나요?
[김주하]정신적인 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방송국에 입사하려면 배경이 없으면 안 된다는 유언비어가 있었는데 다른 방송국 2차 시험을 볼 때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기는 배경 없으면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와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몇 년 동안 고생한 것들이 다 헛일이었다는 생각에 충격이 컸지요. 그래도 지금까지 쭉 해온 것이 있으니까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끝까지 버텼지요. 돌이켜보면, 그런 유언비어나 소문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가 그것 때문에 꿈을 접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커리어넷] 1997년 아나운서로 입사하셔서 2004년 사내 기자시험을 통해 보도국 기자가 되셨는데요, 이렇게 기자로 직종을 바꾸자고 결심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주하] 우리나라에서 앵커는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이고, 아나운서는 뉴스, MC, DJ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을 칭하기 때문에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아나운서에서 기자로 직종을 바꾸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서 뉴스에 좀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앵커를 꿈꿨기 때문입니다. 아나운서로서는 그런 파워를 가지기가 좀 힘들더라고요. 아나운서국과 보도국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보도국은 제가 뉴스를 진행하러 가는 곳일 뿐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꿈꾸던 앵커 상을 찾기 위해 전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커리어넷] 방송국에 근무하시면서 내가 이 길로 오길 잘했다 혹은 의미 있었다고 느꼈던 일들은 뭐가 있을까요?
[김주하]대개는 앵커를 꿈꿀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멋있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죠. 하지만 제가 앵커를 하면서 찾은 의미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것들을 얘기해 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았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 세상이 됐지요. 제 생각으로 앵커는, 국민들과 같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고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서 울고 웃고 한스러워하고 안타까워했던 2002년 월드컵 때가 제게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월드컵 시즌에는 뉴스 직전까지 생방송으로 축구 경기를 중계했는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뉴스를 해야 하는 저로서는 우리나라가 경기에 이겼을 때, 비겼을 때, 졌을 때를 다 준비해야했지요. 제대로 준비를 못하는 바람에 경기 결과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멘트를 하는데도 국민들도 좋고, 저도 좋고……. 그때 국민들과 같이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제게는 죽을 때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커리어넷] 앵커가 되고 나서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김주하] 개인 생활이 없어요. 아무리 즐겁다 해도 일은 일이고, 취미생활이나 가정생활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누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남편이 얘기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쉴 수 있는 시간이 일 년에 딱 한 번인데 그것도 정식적으로는 사흘 밖에 없어서 공휴일에 일하고 대신 휴가를 받는 수밖에 없거든요. 게다가 제가 뉴스데스크 앵커와 경찰기자를 일 년 넘게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경찰기자로는 새벽 4시에 출근해야 했고, 뉴스데스크 앵커로는 밤 11시에 퇴근해야 했습니다. 결국엔 쓰러졌죠. 그래서 그때는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도 하고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커리어넷] 직업마다 갖추어야 할 자질이 있을 텐데, 특히 앵커가 되기 위한 자질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앵커가 되기 위해서는 외모가 호감형이어야 하나요?
[김주하]앵커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호흡해야 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앵커가 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만약에 앵커가 상위 5% 안에 드는 사람이면, 자기가 살아온 길은 대부분 그 5%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해도 한계가 있죠. 그럼 나머지 부분을 아우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중산층, 즉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계층에 있었으면서 그 아래도, 그 위도 경험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앵커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외모는 호감형인 게 좋습니다. 호감형은 예쁘거나 잘생긴 것과는 다릅니다. 요즘은 연예인도 무조건 예쁘다고 주목받는 건 아니잖아요. 앵커나 아나운서들은 신뢰감 있는 얼굴이 가장 좋죠.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저 사람이 하는 말은 다 믿고 싶고, 저 사람은 정말 진실 되게 살아왔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면 더 좋습니다. 따라서 미남미녀일 필요는 없지만, ‘호감형 외모=신뢰감 주는 외모’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커리어넷] 언론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요?
[김주하] 언론인이 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보통 직접 취재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비난받잖아요. 현장에 가 보지 않고 생각만으로 기사를 쓰는 것과 직접 가서 체험한 것을 기사로 쓰는 것은 너무나 다르거든요. 현장이 왜곡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자가 모든 현장에 나가서 직접 취재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겁니다. 요즘 중ㆍ고등학생들은 직접 나가서 체험할 수 있고, 그것을 학교에서도 인정해주는 정말 좋은 시스템이 있잖아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체험 중에서 가장 좋은 건, 고아원이나 노인 분들이 모여 계신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계층에서만 살게 돼요. 하지만 기자는 모든 계층을 다 아울러야 하거든요. 소외 계층부터 상위 계층까지 다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상위 계층은 경험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예전에 정기적으로 고아원에 가서, 그곳의 아이들과 지내본 적이 있는데 직접 가서 보고 겪은 사람과, 그저 생각으로만 고아원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경험해 보라는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커리어넷] 입사하신 지 10년이 넘었는데요,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김주하]이 직업의 좋지 않은 점 중에 하나가 제가 하고 싶다고,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청자가 싫다고 하면, 제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있거나 회사에서 인정받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하지요. 그래서 바람이 있다면, 계속해서 이 길을 가고 여기에 남아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앵커가 꿈이었고, 이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춰서 준비한 만큼, 저는 이 일이 간절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10년 후에도 이 자리에 있는 게 제 꿈입니다.
[커리어넷] 마지막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김주하] 보통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으로 꿈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앵커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TV에 비춰지는 50분의 모습을 보고 ‘좋다.’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정말 앵커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 50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들을 준비하는지 등을 다 알아봐야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 등을 통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잖아요. 그걸 모르고 단지 보이는 모습만 좋아서 방송사에 들어온 사람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오래 버티지를 못하게 되지요. 앵커가 뉴스에 나와서 진행하는 것은 정말 마지막으로 마침표 찍는 것과 같거든요.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직업에 대해 공부를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실질적으로 체험을 해 보는 게 가장 좋겠지요. 만약 방송기자가 되고 싶다면 방송사를 견학하거나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서 이 직업에 대해 다 알아보는 건 기본입니다. 기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난 종군기자는 싫어.’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꿈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그 길로 가고 싶다면 밀고 나가야죠.
* 사진 출처: MBC 박영태 국장
金 柱(기둥주) 夏(여름하)
그는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이지만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사는 스타는 아니다. 매달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생활인이다. 그렇다고 회사원이라 하기에도 마땅치가 않다. 조직의 이익을 따르는 직장인이라기보다 공익을 추구하는 언론인이어서다. 선뜻 포착되지 않는 어떤 경계에, 그러나 모두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 앵커 김주하가 서 있다.
어느 워킹맘의 하루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김주하도 그중 하나다. 그는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에게 마감뉴스를 알려주고는 아침뉴스 시간이면 일어나 아들과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MBC <뉴스 24>를 진행하고, 4시쯤 잠드는 김주하는 매일 일곱 시 반에 일어난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아들 준서를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어서다. 워킹맘이라면 겪을 일과 가족의 딜레마. 그는 둘의 손을 모두 잡았다. 희생이라기보다는 선택이다.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최선은 있는 법이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과는 부득이 주말부부처럼 보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 자고, 괜찮은가요?
이제 많이 익숙해져서요. 몸이 적응한 거 같아요. 제가 원래는 잠이 많거든요. 대학 때까지 는 적어도 하루에 7~8시간은 잤던 거 같아요. 처음에 입사해서 아침뉴스 할 때는 친구들이 ‘아, (주하가 매일 나오는 걸 보니) 아침 뉴스는 녹화인가 보다’ 했을 정도니까.(웃음)
밤 10시부터 2시 사이에 자야 피로가 회복된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요.
회사에 산재신청이라도 해야 하나.(웃음) 잠자는 건 엄마가 되고 나서도 달라진 거 같아요. 전에는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가 옆방에서 기침만 해도 내가 들어요. 엄마가 되면 아이를 키울 수 있게 그런 감각이 생기나 봐요.
아이가 막 걷기 시작할 때는 뉴스를 진행하는 엄마를 보고 TV를 향해 달려와서 안아달라고 했다죠.
그런데 엄마가 안아주질 않으니까 토라져서 돌아갔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며칠 반복되니까 그 후론 안아달라고 오지 않고요. 아이 입장에서는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나 봐요. TV와 실제를 아직 구분하지 못할 때니까. 그때는 퇴근하고 들어온 저를 만나도 서먹하게 굴고 그랬어요. 마음이 안 풀린 거죠. 안아달라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기다리다가 혼자 돌아서서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더 마음이 아팠죠.
저희가 진행한 ‘여자의 자격(여자가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앙케이트에서는, ‘꼭 엄마가 되어보라’고 하신 분들이 많아요. 김주하 씨에게는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였나요?
아이는 우리한테 맡기신 ‘기업’인 거 같아요. 성경에 보면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하잖아요. 한 사람을 키워낸다는 게 그렇게 큰일인 거죠. 걱정도 되요. 육아 책에 보면 어른의 부주의로 아이가 가진 재능이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고도 하니까. 괜히 내가 여기저기 쑤셔놔서 아이한테 안 좋은 거 아닌가 싶고.
김주하 씨가 생각하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엔 어떤 게 있나요?
이건 제 생각이니까 누구한테 강요할 수는 없고… ‘봉사’요. 봉사는 제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에요. 나 스스로 내가 가진 달란트보다 더 많은 걸 받았으니까, 갚는 게 제 의무이고요.
달란트(성경에서 말하는 재능 혹은 은사)도 많이 받은 거 같은데요?
에이, 아니에요. 타고난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나는 그쪽은 아니고 노력해서 얻어가는 쪽이에요. (손끝 한 마디 정도를 가리키며) 이만큼이라도 가망성이 있으면 될 때까지 해보는 거죠. 그게 아니면 훌훌 털어버리려고 하고요.
실패한 경험도 있으세요?
그럼요. 많죠. 무지 많아요. 근데 이상한 건 기억이 안나요. 제가 원래 뭘 담고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건 일을 하면서 생긴 일종의 방어기재인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최근에 아이의 성격에 대한 책을 보니까 성격은 태어날 때부터 거의 안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 타고난 성격인 거 같아요.
그때마다 마음 다치면 안 되죠
실은 최근에 있었던 일로 김주하 씨가 인터뷰를 꺼려하면 어쩌나 했습니다. (5일 전 한 트위터러가 김주하가 트위터에 자주 이용하는 ‘빼꼼;;;’ ‘졸리신 분 손~’ 등을 인용해 ‘무뇌’라고 표현해 논란이 됐다. 인터뷰 당일에도 관련기사가 쏟아졌다.)
그 일은 벌써 5일이나 지난 일이고, 서로 한 번씩 말을 주고받고 일단락됐어요. 트위터에서 그 글을 찾으려고 해도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할걸요. 아무래도 언론에 기사가 나오니까 주변 분들도 걱정을 하시는데, 저는 괜찮아요. 자꾸 응원문자가 오니까 거꾸로 제가 ‘아, 이거 심각하게 걱정해야 되는 일이었나’ 싶어요. 사실 지금껏 비슷한 일도 많았어요. 그때마다 마음 다치면 안 되죠. 이번 일은 부풀려진 측면도 있어요. 오늘이 월요일이라 기사거리가 없긴 없었나 봐요.(웃음)
그럼 상처 안 받을 줄로 믿고 하나 더 물어볼게요. 지금도 항간에는 남편과의 불화설이 있습니다만.
저희 불화설은 결혼할 때부터 있었어요. 그래서 남편이랑 저는 그냥 잘 살기로 했어요. 그게 질문에 대한 제일 좋은 답인 거 같고요. 한때는 남편이 빚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3천만 원인가? 그 얘길 듣고 남편은, ‘아니 3억도 아니고 3천이 뭐야’ 했죠. 그런데 요즘은 무슨 소문이 있어요?(웃음) 물론 저랑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 중에 유명한 집안과 결혼한 분들도 있어요. 근데 저는 조금씩 모아서 또 조금씩 늘려가는 게 좋아요. 그런 게 행복 아닌가요?
소소한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군요.
소소하긴요. 얼마나 큰일인데요.
뉴스를 하다 보면, 매일 세상에 어두운 면을 봐야 하는데요. 감수성이 다치진 않나요?
그만큼 좋은 소식들도 있잖아요. 좋은 면들도 먼저 보고요. 감수성이 무뎌졌다는 건 가끔 소설을 읽을 때 느껴요. 소설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건 다른 사람의 삶에 감정이입이 안 된다는 거잖아요. 그럴 때는 우울하죠. 아, 내가 무뎌졌구나 싶어서.
어떤 뉴스가 좋은 뉴스인가요?
내가 아니라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뉴스죠.
김주하 씨 트위터(@kimjuha)는 팔로어가 많은 걸로 유명합니다.(현재 14만2천1백81명) 가끔 들어가 보면 많은 분들의 이야기에 일일이 답해주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트위터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서인가요?
맞아요. 뉴스를 하다 보면 ‘또 이 뉴스야? 전에도 나왔는데’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보는 사람은 그게 아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그게 또 필요한 뉴스일 수도 있으니까요. 트위터는 사람들을 알기 위한 통로이기도 해요. 그리고 다 답하지도 못해요. 시간 시간 틈날 때 하는 거죠. 제가 특별히 부지런해서라기보다는 소통이라는 게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니까요. 일방적으로 듣는 것도 아니고요
대학 졸업 전에 방송국에 입사해 14년차입니다. 쉴 틈 없이 달려온 거 같은데 휴식기간이 있었나요?
출산휴가가 있었죠.
출산휴가가… 휴식기가 될 수 있나요?
앗, 어떻게 알았지? 아이 낳아보지 않으면 모르는데.(웃음) 저는 몰랐거든요. 출산휴가 기간 동안 여유가 있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때 책을 내겠다고 덜컥 계약을 했죠. 제 스타일이 좀 그래요. 일단 일을 저질러놓고 하나씩 수습해가는 거죠. 모르고 덤비는 경우도 많아요.(웃음) 우리 남편이 저를 제일 걱정하는 부분도 그런 점이고요.(김주하는 2006년 출산 후 2007년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라는 책을 펴냈다.)
자기 이름을 건 책을 내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제 책에 특징은 ‘사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거예요. 제 이야기보다는 취재 현장에서 일어난 취재기를 쓰려고 했어요. 초고를 쓰고 나서는 학교 선생님인 동생에게 보여줬죠. 좀 어렵다고 해서 표현들을 쉽게 바꿨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되도록 쓰지 않은 건,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많은 분들이 김주하 씨를 ‘롤모델’로 꼽습니다.(김주하는 2005년부터 대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앵커 1위, 가장 닮고 싶은 인물 1위를 차지했다.) 김주하 씨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손석희 선배요. 선배는 방송을 너무 잘해서, 듣고 있으면 우울해질 정도예요.
기둥 주, 여름 하 김주하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때로 따가울 정도로 익명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유명인의 삶. 그럼에도 그는 뉴스의 꽃이 되기보다는 뿌리가 됐다. 김주하는 이름처럼 여름에 서 있는 나무를 닮았다. 나무 위로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만,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는 시원한.
모든 걸 가진 사람이거나 욕심이 많은 사람. 둘 중 하나일 거라는 짐작은 빗나갔다. 김주하 앵커는 모든 걸 갖진 못했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것까지 포기하진 않는’ 사람이었다.
‘공중파 방송사의 간판 앵커라는 자리가 노력한다고 아무나 되는 일이냐’고 묻기는 쉽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사의 간판 앵커가 되기까지 노력하는 일’은 어렵다. 누군가는 그 노력을 했고, 그 자리에 있다. 먼 훗날 그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가게 된다고 해도 김주하는 크게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것 같다.
“가끔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욕심이 나죠, 그런데 내 몫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빛나는 게 더 나아요.”
/ 여성조선 취재 유슬기 기자 | 사진 오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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