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파인드강사 - 파인드HRD

국민배우,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안성기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본문

강사님과/스타강사/유명강사

국민배우,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안성기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파인드강사 2013. 2. 6. 15:18

 

 

강사섭외/기업특강/명사섭외/유명인 초빙

기업,관공서 교육 강사 정보 제공 1위 '파인드강사 www.findks.com' 와 함께 하세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안성기

2012 제 4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2007 제 44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2001 제 22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1994 제 3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1993 제 38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

1980 제 19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 등등

영화 : 부러진 화살(2012), 라디오스타(2007), 무사(2001), 태백산맥(1994), 투캅스(1994), 하얀 전쟁(1993),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남부군(1990), 성공시대(1989), 깊고 푸른 밤(1985), 적도의 꽃(1984), 안개 마을(1983), 철인들(1982), 만다라(1982),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 안성기는 누구

한국의 '국민 배우' 칭호를 받는 대표적인 배우다. 영화 기획과 제작에 종사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글도 배우기 전에 영화에 출연했는데, 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 열차>가 첫 출연작이다. 이 영화를 필두로 그는 웬만한 영화의 아역은 도맡아 하였다. 이 가운데 1959년에 <10대의 반항>에 출연해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영화상의 문교부 장관상과 샌프란시스코의 영화상 골든 특별상(아역)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얄개전>(59)을 마지막으로, 아역 배우로서는 은막을 은퇴하였다. 아역으로 출연한 영화는 모두 70여 편에 이른다.
그 후, 학업에 열중하던 그는 이장호 감독의 재기작 <바람불어 좋은 날>(80)로 성인 연기자로 컴백했다. 특히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계산된 연기와 철저한 사전 준비, 그리고 천부적 재능과 끊임없는 자기 변신에의 노력은 수많은 영화제의 수상과 함께 국내 톱의 자리에 그를 올려놓았다.

 

 

안성기씨 기사 더 보러가기==========>>> Click

 

 

안성기는 현재까지도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국민배우라는 칭호를 얻었다.

특히, 작년에 개봉한 '부러진 화살'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석궁 사건'을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이다.

이처럼 그는 폭넓은 장르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오래전부터 계속해온 커피광고로 커피하면 안성기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 속에는 커피 회사와 안성기의 우정이 숨어있다.

20일 동서식품에 따르면 이 회사가 안성기를 모델로 기용한 건 1984년으로, 햇수로 28년째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서식품이 올해 창립 44주년을 맞은 걸 감안하면 안성기는 이 회사 역사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동료인 셈이다.
안성기는 2000년 초반, 동서식품의 명절
선물세트 광고에 나온 이후 공식적인 계약을 맺진 않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신제품을 내는 등 필요할 때마다 ‘홍보대사’격으로 공식행사에 나서 동서식품을 돕는다.
회사 관계자는 “안성기 씨와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동서식품에 다닌다고 하면 친근하게 대해 준다”며 “
커피하면 안성기, 안성기하면 동서식품이라는 이미지가 괜히 생긴 게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동서식품과 안성기, 그들의 '우정' 기사 보러가기>

 

  

 

또한 안성기는 유니세브의 친선대사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KBS희망로드대장정팀과 함께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하여 현지 어린이들을 만났다.
꾸준히 보여주는 봉사활동으로
많은 영화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매경이 만난 사람] 영화 `부러진 화살`

석궁교수역 맡은 배우 안성기

 

 

이번 영화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안성기와는 `남부군`과 `하얀전쟁`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둘 다 당시로선 위험한 영화였어요. 정 감독님은 남들 꺼려하는 내용에 과감히 도전하는 작품이 많아요. 그렇다고 폭로만 하고 막 찍는 게 아니라 영화적으로 완성도 있게 찍으시죠."
`부러진 화살`은 정 감독이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원래는 무명 배우로 전부 캐스팅돼 있었는데 마지막에 어떤 분이 정 감독님께 저한테 연락해 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시나리오 보고 바로 다음날 `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드렸죠. 그러니 다른 배역도 전부 기성배우로 바뀌었어요."

그만큼 오랫동안 두루 사랑을 받는 배우는 없다. 벌써 연기인생 55년째다. "너무 오래됐죠. 하지만 연기하는 게 행복해요.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 살아가고 싶어요."

 

 그는 아역 시절에만 70여 편에 출연했다. "촬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죠. 기억은 거의 안 나요. 나중에 커서 보니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 올라간 걸 보고서야 제가 출연한 영화인 줄 안 적도 있어요. 영화가 많이 소실돼 안타까워요."

1959년 `십대의 반항`으로 각종 연기상을 휩쓴 그는 `천재소년`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분 좋았죠. 하지만 중학교 끝나곤 아들 역 맡는 걸 그만두고 학교에 갔어요. 촬영장에선 되바라진 모습이 많다고 어른들이 걱정하셨는데 학교에선 보통 애들보다 얌전했어요."

사실 그가 커서도 배우가 되려 했던 건 아니다. 고교 졸업 후 그는 한국외대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다. "(군에서) 베트남어 교육대 교무관을 하려고 ROTC에 지원했죠. 하지만 전방에서 소위 달고 있을 때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바람에 베트남에서 뭔가 해보려는 꿈이 다 부서졌어요."

 

 연기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배우가 영화 속 인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 다른 하나는 인물이 배우에게 들어오는 것이다. 안성기는 후자에 가깝다는 평이 많다. 무슨 역을 맡아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물이 된다.

"예전엔 배역에 들어가려 많이 노력했죠. 초반에 10편 정도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인물이 많았어요. 하지만 쭉 연기해오니 겹치는 인물이 많아졌어요. 이젠 악역을 해야겠단 생각이 없어요. 악역을 못한다고 배우로서 제약을 받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199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그에겐 또 다른 시련이 다가왔다. 젊은 후배에게 주연을 주고 그에겐 조연을 맡아 달라는 요구가 많아진 것이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마음이 좀 아팠어요. 그래도 앞으로 원하는 게 연기라면 이것도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다만 존재감의 크기에는 변화가 없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랬다. 2000년대 `실미도`(2003)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묵공`(2006)으론 외국에도 진출했다. "외국 진출은 언제든 열려 있어요. 다만 어떤 이야기냐가 중요하죠. 그 인물을 맡는 게 의미가 있으면 환영이에요."

 

 <안성기의 인터뷰기사 보러가기 *.*>

 

 

 

안성기님을 섭외하시려면 070-4351-4752로 연락주세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