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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밴드의 김창완[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파인드강사 2013. 2. 6. 16:48

 

 

강사섭외/기업특강/명사섭외/유명인 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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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밴드의 김창완

 

2012 국제방송교류재단 이사

2011 제23회 한국PD대상

라디오 진행자 부문 출연자상

2011 문화예술 명예교사

2010 SBS 연예대상 라디오 DJ상

2010 사랑나눔 창원 산타바이크 퍼레이드

홍보대사

2008 제23회 골든디스크상 공로상

2007 MBC 연기대상 PD상

1995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

1981 KBS 가요대상 중창부문

1977~ 그룹 '산울림' 멤버


 

■ 김창완은 누구

김창완은 그룹 산울림 리더로, 보컬 기타를 맡았다. 큰 인기를 얻던 산울림은 1979년 창훈, 창익의 군입대로 그룹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으나, 동생들의 입대전에 준비해둔 4, 5, 6집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공백기간을 메꿔나갔다. 동생들이 제대하자 다시 모인 산울림은 7집 앨범으로 KBS 가요대상 중창부문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1983년 9집을 낸 산울림은 동생들의 취직으로 해체된다. 그러나 산울림은 그 와중에 10집을 발표했다. 1986년 김창완은 동생들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산울림 11집을 출반했다. 1991년 12집으로 산울림의 공식활동은 끝이 난다. 1997년 동생들을 다시 불러들여 산울림 13집을 발표하였다.

김창완은 독집 앨범도 몇 개 발표했다. 그리고 2008년, 김창완은 젊은 뮤지션들과 김창완밴드를 결성하여, EP앨범 《The Happiest》를 발매한다.

 

 

김창완 씨 인터뷰 기사 보러가기=============>>> Click

 

 

김창완은 그룹 '산울림'의 멤버로 가수로서 데뷔를 했다.
그 후 10여년 동안 '산울림' 활동을 했고,
현재는 새로운 뮤지션들과 함께 '김창완밴드'로 활동 중이다.
그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창완은 가수활동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최근까지도 '그들이 사는 세상', '내조의 여왕', '일지매', '하얀 거탑',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의 히트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영화에서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링',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등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현재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을 통해 꾸준히 방송활동 중이다.

 

 

 

 

 

 

 

 

 

[Why] [한현우의 커튼 콜]

알면 알수록 더 알 수 없는 인간 김창완

 

길 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왜 사냐" 묻던 소년… 음악으로 쓰는 반성문

 

1966년 봄. 중앙중 2학년생 김창완이 혼자 하교하고 있었다. 서울 계동의 학교 정문을 나와 시청 앞까지 걷던 그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할아버지, 왜 사세요?""아주머니, 왜 사세요?""누나, 왜 사세요?"그가 얻은 대답의 대부분은 "커 보면 알아"였고, 그다음은 "공부나 해 인마"였다. 그는 "의미 있는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1975년 2월 서울대 졸업식을 며칠 앞둔 김창완이 손에 '바리캉'을 든 채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방 전체를 도배하듯 붙여놓은 자신의 그림들을 바라보던 그는 바리캉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완전히 삭발이 된 그는 졸업식에서 가발을 써야 했다. 김창완은 "나는 왕따였으며, 상당히 상태가 안 좋은 아이였다"고 했다.

 

 

산울림은 1977년 ‘아니 벌써’로 데뷔했다. 77년은 대마초 파동으로 대중음악계가 초토화된 지 2년이 지난 때로 MBC가 제1회 대학가요제를 만든 해이기도 했다. 김창완·창훈·창익 삼형제는 ‘무이(無異)’라는 이름의 밴드로 출전했다. 그들의 노래 ‘문 좀 열어줘’가 예심 성적 1위, 서울대 밴드인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2위였다. ‘나 어떡해’는 김창훈의 곡이니 산울림 노래가 예심 1·2위를 모두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삼형제 밴드는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김창완이 대학을 졸업한 뒤여서 대학가요제 참가 자격이 없다고 뒤늦게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삼형제는 ‘우리 노래가 1·2위를 할 정도면 음반을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음반사에 찾아갔고, 이것이 산울림의 탄생이 됐다. 그때 김창완이 을지로에 있던 오아시스나 벽제의 지구레코드사에 가지 않고 종로2가 서라벌레코드에 간 것은 ‘집에서 84번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애초 이 음반은 1971년부터 7년간 이어진 삼형제의 ‘음악 놀이’를 정리하는 기념 작품이었지 산울림의 탄생을 예고하는 앨범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니 벌써’가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김창완과 두 동생은 전혀 생각지 않던 길로 들어섰다.

 

―앞으로도 계속 노래를 할 것입니까.

“나는 노래밖에 모르니까 노래로 계속 반성문을 쓸 거예요. 한국에서 살면서 제일 안타까운 건 어른들이 자기 못난 걸 몰라요. 애들 탓하지 말고 어른들이 반성문을 써야 돼요. 그러지 않고는 애들 못 고쳐요. 나는 정치·경제 개 코도 모르니까 음악으로 반성문을 쓸 겁니다. 우리 노래 듣고 돈 안 줘도 나는 상관없어요.”
그와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의 서가엔 문학 계간지와 디자인 전문지 ‘토털 일러스트레이티드’, 건축지 ‘아키월드’, 체코 사진가 얀 사우덱의 사진집, 자전거와 오토바이 관련 서적이 즐비했다. 한쪽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 1001’ 시리즈 책이 6권 나란히 꽂혀 있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적어도 6006가지는 되는 셈이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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