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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대출신 요리연구가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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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요리연구가) 2010.01~ 노보텔앰배서더 강남 서울 요리사 2006 [SBS 내일은 요리왕] 수상자
한양대 의대 재학생이던 그녀는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 요리사의 길을 선택!
▷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노보텔앰배서더 강남
■ 의대생서 요리사된 이상민 씨 스물여덟 살의 ‘과년한’ 한 처자가 “한 남자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34세 영국인이란다. 제법 사연이 있을 법한 얘기다. 남자는 대영제국훈장까지 받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씨이고, 여자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호텔 요리사가 된 나름 유명한 한국인 이상민 씨(사진)다. 하지만 사실 올리버 씨와 이 씨는 일면식도 없다. 다만 이 씨가 방황할 때 그가 가야할 길에 ‘빛’을 비춰준 사람이 올리버 씨란다. 사연인 즉 이 씨가 어두운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올리버 씨가 등장했고,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것. 이 씨는 “TV가 비춘 빛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빛으로 길을 인도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원래 이 씨는 한양대 의대를 다니던 모범생이었다. 2000년에 입학했지만, 학교 다니던 내내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품었다. 이 씨는 “오빠가 같은 학교 의대를 다니고 있었다”며 “오빠가 주변에서 워낙 칭찬을 많이 받다 보니 그것이 부러워 특별한 고민 없이 같은 학교 의대에 들어갔다”고 했다. 결국 본과 1학년 때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됐고, 방황하던 이때 올리버 씨를 TV로 만났다.
이 씨는 “요리사의 꿈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그날 TV에서 그를 본 것은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2004년 의대를 완전히 그만두고 2005년 3월 한국관광대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를 용납하지 못한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와야만 했다. 교수들의 주목을 받으며 요리에서도 일취월장하던 이 씨는 2006년 모 방송국 요리 프로그램의 요리 대결에 나가 궁중요리로 1등을 거머쥐며 유명세를 탔고, 이 씨의 부모도 이때부터 그를 받아들였다.
2007년 학교를 졸업한 이 씨는 세계 각국의 요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먼저 아랍에미리트로 향했고 아부다비의 7성급 호텔 에미리트 팰리스에서 일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요리사가 현재 서울 강남구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서 일하고 있는 안토니오 피우 씨다. 이 씨는 이후 스위스로 건너가 호텔 요리는 물론 경영까지 배웠고 2008년 말 한국에 돌아와 ‘옛 스승’과 함께 일하기 위해 올해 초 노보텔 강남에 입사했다.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는 체력 관리. 하루 10시간 이상 서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 꾸준한 운동이 필수다. 이 씨는 매일 윗몸일으키기 400∼500개, 5kg 아령은 30분 이상 들고 내린다고 한다. 체력에 관한 한 웬만한 남성 이상이라고 자부한다. 단순히 호텔 주방에만 머무는 요리사가 되길 거부하는 이 씨는 현재 인터넷으로 호주 애들레이드대의 르코르동블뢰 석사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그는 “바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행복해하고 매일매일 감격하고 있기 때문에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며 “앞으로 외국 유명 호텔의 주방장도 되고 싶고, 교수도 되고 싶고, 또 식당 경영도 하고 싶다”며 꿈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이런 그에게 우문(愚問)인 줄 알면서도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이 후회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씨는 “함께 학교 다녔던 의사 친구들이 호텔에 가끔 식사하러 온다”며 “그 친구들이 내 손에는 작은 메스보다 큰 칼이 더 어울리고, 그 큰 칼을 들고 있을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고 하더라”며 현답(賢答)을 했다. 동아뉴스 김기용 기자
▶“오빠들, 나 오늘 부로 학교 안 다녀.”(#1. 한양대 의대 본과 1학년 해부학 강의실))=10년전 이맘 때 한양대 의대 신입생(00학번)이었다. 아버지의 강권도 있었지만 왠지 활동적이고 자유로울 것 같아 그 길을 선택했다.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든 건 2학년 때. 많아진 학습량은 활동적인 그를 책상머리로만 내몰았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의사가 이런 거였나.’ 2002년 4월. 본과 1학년 해부학 강의실. 머리를 싸매던 그가 급기야 자리에서 가방을 싸 일어났다. “야, 너, 수업 중에 어디 가?” “오빠들, 나 학교 안 다녀.” 복도로 걸어나왔다. 마지막 날이었다. 다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부모님은 펄쩍 뛰셨다. 집을 나왔다. 막내딸의 무단 가출. “학교 자퇴서요? 엄마 도장 몰래 파서 냈죠.” 집안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거처를 알리지 않은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전단지와 인터넷 들여다보기로 소일했다. 뭘 할지는 몰랐다. 막연했다. 자유의 바람이 불었다.
▶2년간의 ‘행방불명’…제이미 올리버와 접신하다(#2. 신사역 앞 액세서리 노점)=2년간의 행불(행방불명). ‘알바 인생’이 시작됐다. 고깃집 불판 닦기부터 시작해 안해 본 게 없는 ‘알바 짱’으로 거듭났다. 2003년, 아르바이트로 모은 종잣돈을 갖고 강남 신사역 쪽에 액세서리 노점을 열었는데 대박났다. 남대문에서 물건 떼다 마진 붙여 팔았는데 벌이가 짭짤했다. “한 달에 400~500까지 벌었죠. 구역 깡패들한테 쫓기면서. 하하.” 노점을 접고 다시 무일푼으로 돌아온 2004년 어느 날. 방구석에서 그는 TV라 불리는 ‘운명’을 딸깍하고 켰다.
케이블 채널. 세계적인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 쇼. 흰 셰프복 대신 청바지에 티를 걸친 그의 요리는 록 콘서트 같았다. 카메라를 향해 거침없는 코멘트를 던지면서, 그는 다양한 허브를 양도 재지 않고 툭툭 던져 넣었다. 이씨 몸에 전기가 올랐다. 혼이 ‘아바타’처럼 올리버에 빙의됐다. 자신이 요리를 하는 듯했다. “‘진짜 멋있다’ 딱 그거. 온몸에 전율. ‘이거다.’” 소스만 12시간씩 끓이는 프랑스식 요리는 휴지통에 들어간 듯했다. 똑같은 요리도 만들어보고 올리버의 책도 사다 탐독했지만 ‘이거 갖곤 안되겠다’싶었다. 포털 검색창에 ‘조리학과’를 쳐넣었다.
▶“의대에서 또라이 한 명 왔대.”(#3.TV 요리왕 뽑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장)=검색 결과에 뜬 한국관광대에 잴 것 없이 원서를 던졌다. 요리를 시작하면서 긴 머리가 덥고 불편했다. 미련없이 머리를 잘랐다. “여자냐?”가 면접관의 첫 질문이었다. 결과는 합격. 학내엔 이미 ‘의대에서 온 또라이 한 명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2006년 TV 출연은 ‘급가속 페달’이 됐다. 교수님 소개로 ‘내일은 요리왕’이란 프로에 나갔다. 공개 경쟁으로 일반인 요리왕을 뽑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거침없는 입담과 빼어난 실력으로 화제몰이를 하며 1500대 1의 경쟁을 뚫고 “1등을 먹었다”.
▶#4.‘UAE 아부다비-스위스 부베-대한민국 서울’=그해 겨울, 더 큰 ‘가출’을 감행했다. 열사의 땅 아랍에미리트로 날아가 아부다비 최고급 호텔 에미리트 팰리스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했다. “7성급인데 월급이 고작 20만원이었어요. 인종 차별도 받았고, 혼자 다니면 ‘얼마면 되냐’는 성희롱도 다반사였죠.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 뒀어요.” 이듬해 스위스로 건너가 언어 장벽과 싸웠다. 현지 학교에서 조리경영학사를 땄고, 현지 호텔에서 근무했다. 쉼없이 달려온 몸, 잠깐 쉬자는 생각에 귀국했다.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 자리가 있다는 말에 ‘노느니 일하자’는 생각에 입사했다. 입사 첫 날,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 입는데 들어서던 여직원들이 소스라치며 줄행랑쳤다. 남자같은 외모 탓이었다. 올해 1월, 입사 1년만에 초고속 승진했다. 보통 2~3년 걸리는 쿡 서드(3rd) 생활을 1년만에 끝내고 쿡 세컨드(2nd)가 됐다.
예쁜 디저트와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 쪽에는 여성이 많지만, 양식 조리 분야에서 여성 셰프는 극소수다. 무거운 식자재를 들고, 위험한 칼로 커다란 고기와 씨름하며, 뜨겁고 센 불에 언제나 노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박스를 들거나 높은 데 있는 걸 꺼낼 땐 간혹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이를 악물고 남자들과 똑같이 하죠. ‘고마워’로 넘어가면 (그 일은) 자기 게 안 되잖아요.”
팔과 손에 흉터가 여럿이다. “팔뚝은 프라이팬에, 손등은 오븐에 덴 거예요. 부모님은 속상해하죠. 딸내미인데. 이 정돈 약과죠. 주방 다른 형들은 조폭 같다구요. 하하.” 왼손엔 자상(刺傷)도 있다. “주방에서 칼을 떨어뜨렸어요. ‘이 나가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앞섰죠.” “내 칼!”을 외치며 자유낙하하는 칼을 손으로 턱 잡았다.
▶“사람마다 간이 다른데, 어떻게 일률적으로 계량하죠?”=의대생 시절, “칼로 째고 들어내는” 일반외과를 지망했던 그는 작은 메스 대신 큰 칼로 여전히 ‘해부’를 한다. “닭 자르는데 해부학 지식이 그대로 적용되더라고요.”
그는 운동 중독자다. 대학 시절 합기도, 유도를 했다. 지난해부터는 복싱을 배웠고, 10㎞ 마라톤도 시작했다. 마라톤은 지난 5월까지 4번이나 대회를 완주했다. 끈기가 더해졌다.
이씨에게 가장 짜릿한 순간은 밀려드는 주문을 주방 식구들과 척척 호흡 맞아 모두 해결해낼 때다. 요리가 모두 빈 접시로 돌아오면 금상첨화. 주방 식구들과 호형호제하며 호텔 근처 선술집에서 소주잔을 건네는 뒤풀이는 가장 편한 시간이다.
이씨의 도전 이야기는 여기서 페이드아웃될까? “내년에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마저 할 거예요. 물론 일하면서요. 교수가 돼 후학을 가르치는 게 일차 목표. 다음은 제이미 올리버쇼 같은 나만의 요리쇼를 갖는 거죠. 늘 그 장면을 상상해요.” 그의 요리관은 인생을 닮아 있었다. “통 크고 자유로운 요리를 보여주고 싶어요. ‘3분의 1 티스푼’ ‘2분의 1 작은 술’ 이런 것 말고. 사람마다 간이 다르잖아요. 그걸 일률적으로 계량할 수 있나요?” 헤럴드 경제 임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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