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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녀, 장미란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파인드강사 2013. 2. 13. 17:37

 

강사섭외/기업특강/명사섭외/유명인 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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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역도선수

출생 : 1983년 10월 9일 (강원도 원주)
신체 : 170cm, 114kg
소속팀 : 고양시청
가족 : 어머니 이현자, 동생 장미령

 

 

 

 

 

 

 

 

 

 

 

 

 

 

 

 

 출처 : 네이버[캐스트] - 세계를 들어올린 '아름다운 손'

 

[세계를 들어올린 장미란]

소녀는 또래들보다 덩치가 큰 편이었다. 별명도 ‘나는 돈가스’였다. 부모님의 권유로 역도에 입문했지만 친구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며 꾸준히 역도선수로서의 길을 걸었고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그리고 국내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메달리스트가 됐다.

 

 

장미란 선수의 역도인생은 그랬다. 스스로 하고싶어 택한 운동은 아니었지만 일단 시작한 뒤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했다. 훈련과 결과가 정비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역도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고,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놨다”고 말해 역도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장 선수를 빛내는 건 올림픽에서의 성적도 그렇지만 그의 겸손한 삶의 자세다. 장 선수는 올해 런던 올림픽에서 4위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메달을 획득했을 때보다 더 큰 찬사를 받았다. 잔 부상 누적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그의 몸상태가 최악이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는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다치지 않고 경기를 끝내서 다행”이라고 담담히 말해 감동을 안겨줬다.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기에 그의 눈물은 온 국민을 울렸다. 그가 ‘로즈란’으로 불리는 건 누구보다도 내면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인터뷰>

장미란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뒤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아시안게임 생애 첫 금메달의 기쁨 보다도 1년간의 고통과 인내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 :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마치고 '안식년'으로 삼았어야 할 2009년 오히려 오버페이스를 했다.

장미란 : "지난해 국내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고 하여 한국 역도인으로서 나몰라라 할 수 없어 바벨과 씨름했다. 언제 다시 국내에서 세계대회가 할 지도 모르고 역도 붐을 위해 출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자 : 설상가상으로 올해 1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실을 왜 숨겼나?

장미란 : "사고내신 (가해자) 분께서 엄청나게 미안해 하실텐데 이런 뉴스가 나가면 더욱 힘들어하실 것이다"

기자 : 그렇지만 무관심 속에서 눈물나는 재활을 했을 것 같은데?

장미란 : "무관심이야 늘 있던 일인데요 뭘. 대회 때 반짝 인기있는 것 한 두번 아니잖아요"

기자 : 9월이 되서야 슬슬 훈련에 참가했다. 9월 18일에 열리는 세계 선수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감독과 물리치료사가 모두 참가를 말렸는데, 그럼에도 대회 참가를 강행하는 이유는?

장미란 :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대표팀을 위해(올림픽 출전권 확보 차원)뛰고 싶었다"

대표팀 관계자 : "대회 내내 안쓰러웠다. 대회기간동안 운동하는 걸 힘겨워 해서 서 있는 시간 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대표팀의 올림픽 쿼터 확보에 큰 도움을 줬다."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도 정상이 아니었다. 무리하게 페이스를 끌어올리다 이번엔 허리를 삐끗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목 통증도 남아있던 상태였다. 만신창이가 됐다. 하루에도 몇번씩 물리치료사를 들락날락했고 표정은 어두웠다. 편도선이 좋지 않았는 지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살았다.참가를 말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엔 개인 욕심을 부렸다.

수로서 생애 마지막이 될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그러나 이날도 운동량이 부족해 왼쪽 팔에 힘을 줄 수가 없어 바벨이 계속 기울었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태초'의 근육까지 쥐어짜냈다.

그리고 결국 해냈다.

 

 

 

 

2012 올림픽, 역도 장미란 눈물 "국민들께 실망시켜드려"… 그래도 감사합니


[이데일리 스타in 올림픽 특별취재반]2012 런던 올림픽을 향해 출국하는 장미란은 무겁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어깨 부상이 심각했던 상황. 현재 몸 상태로는 아무리 잘해도 금메달을 딸 순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미란의 어깨 부상은 알려진 것 이상으로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손을 위로 올리는 것 조차 힘겨울 정도였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그런 장미란에게 자신이 어깨 재활 때 쓰던 튜빙(근력 강화 밴드)을 선물했다. 그리고는 감사 인사를 전해 온 장미란과 한가지 약속을 했다.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프다는 핑계 대지 말자.” 장미란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 감독과 장미란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후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그동안 특별한 우정을 쌓아왔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정신, 또 쉽게 뒤 돌아보거나 도망갈 곳을 찾아서는 결코 진정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마음이 통했기에 40년 넘는 나이차를 뛰어 넘어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동지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장미란은 끝까지 자신의 불리함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부상에 대한 질문에도 그저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올림픽을 즐기겠다고만 답했다.

역도는 스스로와 싸워 이겨야 하는 스포츠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치가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있다.

용상 최강자 장미란의 최고 기록은 187kg. 그러나 6일(한국 시간) 그가 여자 역도 75kg이상급에 출전해 들어올린 기록은 164kg에 불과했다. 자신의 최고 기록에 무려 23kg이나 부족한 수치. 힘겹게 그 무게를 들어봐야 동메달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장미란이 바벨을 들기 위해 나섰을 때 금메달을 다투고 있던 저우루루(중국)와 카시리나(러시아)는 등장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신청한 무게 자체가 장미란 보다 훨씬 무거웠기 때문이다. 용상 세계 기록 보유자인 장미란에게는 서기 싫은 무대였을 수도 있다.

늘 최고의 자리에만 서 있었던 그다. 굳이 이번 대회에 나가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장미란은 도망가지도, 아프다는 핑계를 대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들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장미란은 모든 것이 끝난 뒤에서야 처음 힘든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에게 돌아온 건 4위라는 성적표. 하지만 그가 들어올린 감동은 그 몇배 이상 든든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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