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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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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파인드강사 2013. 2. 13. 15:13

 

 

섭외/기업특강/명사섭외/유명인 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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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


2007~ 문사철 기획위원회 위원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 석사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도서 : 장자의 철학, 공자&맹자, 장자&노자,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중국 철학 이야기, 과학이 나를 부른다, 스승 이통과의 만남의 대화,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중국 철학 이야기,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회남자&황제내경,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장자 읽기의 즐거움 망각과 자유, 철학 삶을 만나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상처받지 않을 권리, 철학VS철학, 철학이 필요한 시간, 김수영을 위하여


방송 출연 : 한국방송, TV특강(2011), MBC 라디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2011), EBS라디오 북카페(2012)


[귀 기울여 들어보니]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이즈음 그의 책을 손에 들게 된 건 행운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과자 봉지처럼 타성적으로 흘러가던 삶. 내 의지대로 느끼고, 생각하며, 열렬하고 정직하게 살지 못했다는 자책은 그러나 늦은 것이 아니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듯 인문학의 숲을 여여하게 산책한 어느 철학자에게 지금, 우리에게 왜 철학이 필요한지를 들어보았다.

 

 

 

“베개로 써도 손색없겠다”는 기자의 말에 강신주 씨는 자신이 쓴 <철학 vs 철학>을 베고 누웠다. 지난해 출간한 이 책은 철학서가 쉽게 넘을 수 없다는 ‘1만 권의 판매고’를 가뿐히 넘었다.


하루하루를 생활의 달인처럼 반복적으로,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낸 아버지는 환갑을 맞이하던 날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해 달라고 청하셨다. 순간 아득해졌다. 나는 살면서 아버지가 책 읽는 모습을 뵌 적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런 풍경은 떠오르지 않았다. 딸 셋을 모두 4년제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니 아버지는 한 명당 16년씩 계산해도 48년치 교과서와 참고서, 소설책과 시집을 댄 셈이다. 그런데 정작 당신을 위한 책은 단 한 권도 갖지 못했다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을 읽고 싶다던 아버지의 말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산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는 거죠. 억지로라도 길을 뚫고 가보면 저 아래에 마을이 보여요.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고 철학이죠. 아버님이 책을 선물해 달라고 하신 건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다는 뜻일 거예요.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은 거죠. 인문학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196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철학자 강신주 씨.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386세대’. 박사 학위를 마친 이듬해 그는 6.29 민주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군대에 갔다. 그리고 3년 뒤,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가난한 자는 오로지 부자가 되는 게 목표였고,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실은 것처럼 사람들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 시절 철학을 공부한다는 게 현실과의 거리 두기였다면 군대에 다녀오고 난 후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그 위압감은 상당했다. 그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여행을 하듯 철학서를 읽어나갔다. 역사가 무엇이고, 인간이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탐독하기 위해 크게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그랬더니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동네가 얼마나 누추하고 지저분했는지, 나는 얼마나 찌질하게 살아왔는지 고개를 돌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느낌이었다.


철학은 낯설고 불편한 것
솔직히 철학서나 인문서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삶과 동떨어진 얘기, 온갖 이해할 수 없는 개념어로 지식을 자랑하는 학자들의 전유물, 우리 사회에서 철학은 그런 용도로 쓰여진다. 대학에서 철학을 그렇게 가르친 탓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철학이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다. 싫은 소리 하는 부모처럼 철학은 인간에게 ‘왜 비겁하게 사냐고, 앵무새처럼 남이 떠드는 대로 흉내만 내고 사냐’고 질책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온전히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산 적이 있나. 사회정의를 구현하자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의 본성에 귀 기울이며 산 적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람에게서 주워들은 말을 내 생각인 것처럼 되새김질하며 살지 않았는지. 남이 끼워준 단추는 언젠가 다시 풀어 채워야 할 날이 온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스스로 단추를 끼우는 일이다. “우리는 철학을 교양으로 받아들이죠. 교양이요, 화장 같은 거.
잘 꾸민 사람은 막 뛰질 못하잖아요. 화장이 날아갈까봐, 옷이 더럽혀질까봐. 교양을 자랑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행동하지 않죠. 하지만 진짜 삶을 살면 남는 것이 있어요.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고요.”

 

 

 

 

개처럼 살지 않는 법
우리는 모두 살아가기 힘든 때가 오면 기댈 곳을 찾는다. 아버지가 책을 읽고 싶었던 것처럼 나라가 어지럽고 경제가 어려워지니 사람들은 인문학을 찾는다. 최근 2~3년 사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온갖 잡지와 신문에서 인문학을 다루고,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철학서가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강신주 씨의 전작을 소개하는 대형부스가 마련돼 있다). 대학원에서 <장자 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오늘까지 철학자 강신주 씨가 외친 건 ‘철학의 대중화’였다. 이즈음 그가 주목을 받는 건 우리나라에 철학자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멋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생각하고 살아낸 대로 써 내려간 그의 사유는 대중이 읽기에도 무리 없을 정도로 쉽고 친근하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철학 vs 철학>까지, 그의 책엔 나무줄기 같은 맥이 있다. 철학과 시가 공존한다는 것.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 네그리와 박노해, 바디우와 황지우….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한국의 시와 서양 철학자의 사유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보여주고, 그것이 결국 인간의 삶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우쳐준다. 그리하여 시인의 옷을 입고 철학자의 신발을 신은 채 산봉우리를 완주한 듯한 정서적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도 마찬가지다. 달나라 언어처럼 낯설게 들리는 개념어는 버리고 ‘개처럼 살지 않는 법’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같은 궁금증이 샘 솟는 소제목으로 철학을 이야기 한다. 교양이라는 ‘화장기’를 없애고 대중에게 다가서는 노력이야말로 철학자의 본분 아닐까. 나는 이 책이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이라는 부제를 단 것을 보고 ‘그래, 점집에 갈 게 아니라 이런 책을 읽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붓펜을 들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 내려간 책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아버지를 떠올리게 됐다). ‘중국 명대의 유학자 이지(1527~1602)는 매우 중요한 철학자이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솔직한 정신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던 사람이다. (중략) 50세 이전에 한 마리 개처럼 살았다는 이지의 투철한 자기반성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50세 정도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삶이나 그로부터 얻은 학식이나 평판 등을 정당화하는 데 나머지 생을 할애하는 법이다. 그렇지만 이지는 비범했다. 물론 이것은 그가 50세까지도 인문학적으로 투명한 정신, 즉 동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한 마리의 개처럼 살았다고 토로하는 순간 그는 드디어 다른 누구도 아닌 이지 그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다른 개가 짖더라도 그는 이유가 없다면 짖지 않게 된 것이다.’

“전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요. 우리가 인생에서 겪어야할 고통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그걸 일시불로 갚느냐, 할부로 갚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고요. 일시불로 확 갚으면 나머지 36개월이 자유롭고, 할부로 찔끔찔끔 갚다 보면 늘 허덕이게 되죠. 하지만 일시불로 확 갚는 사람들 많지 않아요. 미루고 미루죠. 하지만 그건 갚아야 할 빚이거든요.” 인생에 진 빚을 일시불로 갚을 땐 뭐가 좋으냐는 농담에 그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글쎄요…, 제 경우엔 찌질함이 없어진 것 같아요.” 가난한 대학 시절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한 친구와 자주 술을 마셨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언제나 친구가 택시비를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는 집이 멀고, 돈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돈이 없어 그가 택시비를 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머니에 5천 원짜리 두 장이 있었지만 한 장만 꺼내 친구에게 내밀었다. 그는 친구가 떠난 뒤 주머니에 든 5천 원을 만지작 거리며 집까지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도 못 되는 돈을 굳이 남긴 건, 불안했기 때문이다. 5천 원을 얻은 대신 친구를 잃었음에도 그 당시엔 그걸 몰랐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내가 참 찌질했었지’ 느낄 뿐이다.

 

 

 

“부모님 계몽 못 시켜요, 아이들 떠들게 놔둬야 해요”
가난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그릇을 깨면 손을 안 다쳤는지 먼저 묻지만 옛날 어른들은 귀싸대기부터 올려붙였다. 오래된 가족사진 안에서 아이들이 하나같이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다 돈이기 때문에 우는 표정을 짓거나 움직였다간 사진을 망친다고 된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제 부모님은 무슨 일만 있으면 자식들한테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 부모 세대는 웬만한 일로도 자식을 때렸어요. 제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아버지가 그 노래를 부르는 날은 내가 맞는 날이었어요. 화가 많이 나셨거나 우울할 때 부르시는 노래거든요. 가난이 익숙한 사람들의 삶이란 때로 비참해요. 어쩌겠어요. 그분들은 그 세계에서 너무 오래 사셨는 데. 그걸 건 드린다는 건 예의가 아니에요. 가끔 여행이나 보내 드리고 책 몇 권 스윽 방에 놓아드리는 거죠.”

화목한 가족이란 식구들이 제각각 자기 소리를 내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부모님은 부모님 방식대로, 아이들은 아이들 방식대로 모두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투덜거리고, 싸우고, 화해하고. 내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아이를, 부모를 재단하기 시작하면 집 안은 조용해진다. 서로 말이 없어지는 거다. 겉으로 보기엔 부모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 같지만 그런 아이는 자아가 형성되면서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온다. 가족이 우당탕탕 시끄럽게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정직하다는 뜻이다. 각자의 삶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다는 뜻이다.

“4월 초순쯤 여의도 윤중로에 가면 벚꽃이 피잖아요. 벚꽃이 피는 시기가 한 달 정도 될 거예요. 나무 단위로는 한 일주일씩 펴요. 그런데 겨울에는 거길 가도 그게 벚나무인지 모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벚나무라고 불러요. 꽃이 피는 시간, 그게 한 시간이어도 되고, 3년이어도 되는 거 같아요. 그 3년 때문에, 일주일 때문에 1년 내내 벚나무라고 불리는 거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살아가는 건, 그런 시간을 갖는 것. 정직하게 자기를 다 걸어 보여주고 넘어지는 것. ‘아, 행복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살았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죠.”

 

강신주의 철학 인터뷰 보러가기 CLICK

 

 

대중 철학자 강신주

진정한 인문학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을 길러줍니다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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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사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으로 아름다운 자태와 향내에 소홀한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이 이름 모를 꽃보다 어리석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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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중

 

 

 

강신주는 ‘대중 철학자’ ‘현장 철학자’로 불린다. 어려운 철학 이론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고, 대학 강단이 아닌 각계각층의 다양한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펼친다고 해서 생긴 수식어다. 그는 철학 분야에서 단연 첫손 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한 대형서점 철학 코너에는 강신주의 책이 무려 6권이나 진열돼 있다.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책은 2011년 2월 출간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다. 철학서로는 드물게 출간한 지 1년도 안 돼 5만 부가 팔렸다. 인간의 본성은 상처받기 쉬우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숙명적인 상처의 화두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이 책은 심리학 저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어루만진다. 삶의 근원적 모순에 부닥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철학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철학책을 집어 들었고, 그의 전작들이 다시 조명받았다.

지난 10년간 그가 쓴 철학서는 무려 20여 권에 이른다. 연세대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동양철학을 전공했지만, 서양철학과 국내외 고전, 현대시를 섭렵하며 인문학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다루는 깊이 또한 천차만별이다.

‘인문학 카운슬링’이라는 부제를 단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 입문 편에 속한다면, 김수영・김춘수・황지우・기형도 등 우리나라 현대 시인을 들뢰즈・푸코・사르트르 등 서양의 현대 철학자들과 비교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나 이 책의 후속 편인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은 그보다 조금 더 인문학적 깊이를 요구한다. 또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한가’의 명제를 각각 공자 vs 묵자, 양주 vs 한비자의 철학으로 설명하는 《철학 vs 철학》은 9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한층 더 집중도가 요구된다. 최근작인 《제자백가의 귀환》은 본격적인 철학서다. 총 12권 출간할 예정인데 현재 1, 2권 출간된 상태이며, 2014년 완간할 예정이다.

강신주는 상아탑에 갇힌 철학을 현실 무대로 불러낸다. “인문학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고,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학문”이라는 그는, 철학을 인간의 풍요로운 사고를 위한 도구 내지 틀로 본다. 역사 속에 사장된 학문이 아니라 현재의 고민과 상처를 해결하고 새로운 삶의 규칙과 논리를 제시할 수 있는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는 인문학 주치의 역할을 자처한다. 인간의 상처를 직시하고, 그 상처를 치유할 사유의 힘을 길러주는 철학서를 쓴다.

 

 

 

상처의 크기와 종류는 제각각이다. 사랑과 이별로 인한 상처나 소통 부재로 인한 상처 등 개별적인 상처부터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시대의 상처까지. 전자의 상처를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다룬다면, 후자의 상처는 《제자백가의 귀환》에서 다룬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의 경우, 삶의 실제적 고민을 먼저 정한 후 이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철학자의 사상을 나중에 적용했다.

주치의로서의 역할은 강연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대중 강연에 강하다. 청중의 관심사와 상처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맞춤 강연을 한다. 강연 도중 강연 주제가 잘 먹히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주제를 확 바꾼다. 그는 “몇 마디 말을 섞어보면 5분 안에 청중의 전체적인 경향과 정신 상태, 몇몇 위험인물이 보인다”고 했다. 그에게 강연 요청을 하는 곳은 다양한데,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고등학교와 자신의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이다.

“고등학생들은 강연의 효과가 커요. 마치 부채와 같아서 이만큼 말하면 저만큼 퍼지면서 반응하죠. 학생들에게는 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강연 도중 우는 아이도 많아요. 고통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문학이 잘 안 먹혀요. 인문학은 온실의 유리를 깨고 태양과 바람을 맞으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거니까요. 제 책을 다 읽은 사람들이 부를 때도 꼭 가려 합니다. 책은 말을 거는 거잖아요. 말을 걸었으니 대화를 주고받아야죠.”

요즘 그의 스케줄을 보면 스타 철학자로서의 인기가 실감 난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는 오전과 오후에 강연이 각각 있고, 출판사 관계자 미팅이 두 건 있다고 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3~4시간.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밤늦게 전화해서 고민 상담을 해오는 독자도 있고, 술 취해 넋두리를 늘어놓는 독자도 있단다. 그는 “강연 도중 코피를 흘린 적도 있다”며 “그건 내 자긍심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를 철학자의 길로 이끈 건 ‘애정 결핍’과 강한 ‘호승지심(好勝之心)’이다. 경남 함양 출신인 그는 가난한 집안의 2남1녀 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부모는 상경해 쪽방을 하나 얻어 온 가족이 바글거리며 살았다. 어머니는 늘 부업에 묻혀 사느라 자식들 옷 갈아입힐 여유가 없었다. 비염이 있어 콧물을 줄줄 흘리고, 옷도 자주 못 갈아입어 온 소매가 콧물로 반질반질하던 그는 아이들의 기피대상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여자 짝꿍 부모의 요청으로 1주일 만에 자리를 바꾼 적도 있다. 관심과 애정은 그에게 사치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그러다 전환의 계기가 생긴다. 특활로 택한 독서반에서 써낸 글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상을 받은 것. 그는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그 글을 낭독했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오자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대부분의 저술가들이 하듯, 색 띠지를 붙여 표시하거나 메모 하나 하지 않는다. 읽은 책의

유일한 저장고는 그의 뇌다. “해당 텍스트는 그 문맥에서만 읽히기 때문에 책을 집필할 때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책 집필 과정을 오케스트라 지휘에 비유한다.

“집필에 필요한 책을 캐스팅해서 쌓아두고 다시 읽어요. 처음 읽을 때 한 달 걸린 책을 다시 읽으면 2~3시간이면 끝나죠. 읽었던 추억이 있고, 넘기는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나니까요. 전체의 곡에 대한 감응은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책에 휘둘리죠. 지휘자인데 바이올린에 휘둘리면 안 되잖아요? ‘베르그송, 넌 이 대사 쳐,’ 이런 식으로 마주침의 순간이 모여서 책이 됩니다.”

그는 산을 좋아한다. 우울하거나 새로운 발상이 필요할 때마다 산에 오른다. 산은 그의 친구이자, 인생의 깨우침을 주는 공간이다. 난해한 철학자를 공부할 때에도 산을 정복하는 기분으로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산에 오르고 보니, 그 철학자를 정복하고 보니 비로소 알았다. “철학이라는 것, 시라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것을.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또한 “등산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산은 자기 걸음으로 올라가야 해요. 부유하든 학력이 높든 간에 자기 힘에 닿는 만큼 갑니다. 헬기로 오른 사람은 산에 오르는 희열을 못 느껴요. 남 흉내 안 내고 내 걸음으로 올라가야 ‘아, 잘 살았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업어주면 그 아이가 정상에서 느낄 희열을 엄마가 뺏는 겁니다. 보폭이 달라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으면 맞춰줘야죠. 빨리 가자고 손으로 잡아 끌 필요 없어요. ‘여기까지만 와도 돼. 그만 내려가자’ 하면 되잖아요?”

강신주는 달린다. 대중이 그를 필요로 할수록 그의 집필에는 가속도가 붙고, 강연 횟수는 늘어난다. 자신을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이 난다는 40대 중반의 철학자 강신주. 웬만한 동서고금의 철학자를 거의 섭렵하고 저서로 남긴 그는 얼마나 더 멀리, 더 깊이 달릴 수 있을까.

“저는 아직 저자가 아닙니다. 제 글을 쓴 건 하나도 없잖아요. 다 해설서죠. 해설하되 강신주식으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루소가 루소식인 것처럼 해야죠. 우리나라에 진정한 철학자가 있는지 보면 회의감이 듭니다. 거의 다 해설가들이죠. 50세 정도면 해설가가 아니라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자백가 시리즈를 마친 다음에는 그때 보이는 걸 해야죠. 이성복 시인이 그랬어요. ‘방법이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요. 사랑 대신 삶을 넣어도 돼요. 가장 마지막에 가봐야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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