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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야구선수 양준혁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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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야구선수 양준혁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파인드강사 2013. 2. 13. 14:57

 

강사섭외/기업특강/명사섭외/유명인 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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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야구선수, 스포츠 해설가/ 양준혁 

 

 

 

 

 

"저도 양준혁처럼 될래요"

코오롱 `비전드림캠프` 어린이 직업 체험

 

 

 

"깡!"

알루미늄 배트의 청량한 타격음이 귓가에 퍼졌다. 자신의 키만 한 야구방망이를 든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타격 연습용 티배팅기 앞에서 힘껏 야구공을 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거구의 사내가 연신 땀을 닦으며 어린아이들에게 타격 폼을 지도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사내가 티배팅 연습기에 올려주는 공을 치며 즐거워했다.

지난 14일 과천 관문체육공원에 나타난 거구의 사나이는 바로 양준혁 해설위원(전 삼성라이온즈 프로야구 선수)이었다. 양 해설위원은 이날 야구선수가 꿈인 과천ㆍ안양 지역 사회복지관 소속 어린이 59명을 대상으로 캐치볼, 타격 등을 직접 지도하며 약 2시간 동안 아이들의 일일 코치를 맡았다.

이날 캠프에 참여한 관양중학교 1학년 최장훈 군(13)은 "평소 야구를 좋아하지만 야구를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양준혁 선수와의 만남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일 강사로 나선 양 해설위원은 "가난하고 어렵던 어린 시절, 야구를 포기할 만큼 위기도 많았지만 당시 나의 롤 모델이었던 이만수 선수를 보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며 "이번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도 나를 롤 모델로 삼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코오롱그룹의 `비전드림` 행사 중 하나로 열렸다. 비전드림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대상으로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 보고 그 분야에서 성공한 명사를 초대해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첫 회로 과천ㆍ안양 지역에 위치한 관양흰돌과 참사랑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장래 야구선수를 꿈꾸는 어린이 59명이 참여한 것이다. 코오롱그룹 사회인 야구동아리인 코오롱야구단이 행사 진행을 도왔다.

코오롱그룹은 평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펼쳐왔다. 이는 이웅열 회장의 평소 지론과 관계가 있다. 이 회장은 평소 `어린이들이 미래의 주역`이라고 강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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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똑똑똑](16) 양준혁 야구선수

ㆍ“땅볼이라도 죽어라 뛰는 게 프로… 뛰다 마는 거, 난 인정 못해”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기엔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8할이 야구다. 동네 야구를 하며 자라난 촌놈의 소원이자 꿈은 푸른 잔디구장을 직접 밟아보는 것. 1999년 삼성라이온즈 대구구장 장내 아나운서 일을 시작하면서 떨리고 벅차오르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촌놈에게 ‘4번타자’ 양준혁(41)은 존재만으로도 기쁨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우상을, 전설을 넘어서는 신이다. 양신(梁神). 93년 프로데뷔 후 숱한 기록을 갈아치운 ‘한국 야구사의 기록제조기’. 그의 빗속 은퇴식을 보면서 ‘한 시대가 저문다’고 느낀 건 그의 당당한 체구만큼이나 묵직한 무게감 때문이었다.

 

 

 

 

 

 

 

 

 

 

 

“제동아, 니 와 이래 늙었노?”

-참, 나. 형님은 늙은 거 생각도 안 합니꺼? 영감쟁이 다 돼가꼬. 그나저나 축하해야 되겠제?

“안 짤맀으니 축하해도 되지. 한 잔 해도 생큐고. 근데 감기가 와 갖고 정신이 좀 몽롱하다. 긴장도 풀맀꼬. 지난번에 은퇴경기 하면서 비도 오고 마음도 울컥하고 그라다보니 감기가 오데.”

-삼진 세 개 드시면 울컥할 만합니다.

“그러게. 어린애한테 먹으니까 욱하데. 난 안타라도 쳐야 되는데 157㎞를 꽂아뿌니까. 미치겠데. 그날 광현(SK 김광현)이 볼은 도저히 못 치겠더라고. 광현이 신인 때부터 쭉 쳐봤는데 그날 공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내 은퇴경긴데 공 한 번 안 주겠나 했는데 끝까지 안 주데. 박경완 포수도 눈 감아뿌고. 그런데 그게 오히려 기분이 좋더라고. 1등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김광현 선수나 송은범 선수가 마운드에서 모자 벗고 인사할 때 기분이 어땠어요?

“고맙더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나 역시 못 쳤지만 최선을 다한 거고, 팬들도 좋아해주시고. 그런데 그날 내만 못 친 게 아니잖아. 우리 그날 안타 한 개 나왔어.”

-은퇴식 할 때 많이 울던데 기분이 어땠어요?

“은퇴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고민을 많이 해왔거든. 내가 팀에 부담주면
유니폼 벗겠다고 마음먹었지. 올해 그 시기가 오는 것 같아 한 달 이상 고민하는데 얼마나 (생각이) 많았겠노. 그런데 막상 결정하고 나서 팬들이 텐트까지 쳐가면서 반대하니까 덜 외롭더라고. 은퇴식도 축제같이 꾸며주니까 기분도 좋고 고맙고 그렇지. 무지하게 허전할 것 같았는데 편안했어.”

은퇴경기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9회에서 땅볼을 치고도 끝까지 1루로 전력질주하던 형의 모습. 그건 형의 야구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모습이었다. 또 그런 양준혁을 기억하는 야구팬들에겐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난 안타라도 쳐야 하는데 광현이는 끝까지 안 주데
그래도 최선 다하는 모습이 고맙고 기분 좋더라고”
▲ “빗속 은퇴식을 보며 ‘한 시대가 저문다’고 느낀 건 체구만큼이나 묵직한 그의 무게감 때문이었다” - 김제동

-세월 정말 많이 지났죠?

“글치. 니 그때 한창 까불락거렸다 아이가.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웃기더라고. 장내 아나운서 할 때 니 나오면 올 스톱이야. 그거 쳐다보느라 정신없지. 되도 안한
선글라스 끼고 나와가꼬 안되면 벗어뿌고, 그걸로 사람 웃기고. 니 그거 결국 방송에도 써먹데.”

-웃기게 생겨서 그런 거죠. 그런데 형님은 야구 유니폼만 입었다 뿐이지 그게 어디 선숩니까? 깡패지.

“내 스타일이 그래. 어쩔 수 없어. 껄렁껄렁하는 거. 그래서 야구장에서 껌을 안 씹잖아. 씹어뿌면 완전 가뿌는 거야.”

-그래도 어쩌겠어요. 씹는 것처럼 보여요. 만세도 젤 많이 부르고. 형님 뛸 때도 막 휘저으면서 이래 뛰잖아요. 머리부터 들어가고. 머리나 좀 작습니까.

“내가 봐도 폼은 안 나더라. 내 폼 보고 ‘목도리 도마뱀’이라카데.”

-그냥 뛰는 것도 아니고 헬멧 벗어던지고 뛰는 게 허물 벗듯 하잖아요. 승엽이는 땅파고 손들어 젖히지, 동주는 얼굴 떨지, 한수형도 기마 자세에 팽이 돌리지….

“폼이 그래도 20-20클럽 네 번 했어. 200도루는 하고 싶었는데 결국 193개밖에 못했지.”

-와예, 하고 싶다 카지….

“하믄 견제 들어오잖아. 외국 보면 도루하고도 세리머니 하는데 우리는 홈런치고도 뭐 못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아이가. 좀 나댄다 싶으면 다음에 저 놈 나오면 빈볼 던져 맞혀뿌라 했다고. 예전보다 좀 나아졌는데 나는 후배들한테 더 하라고 해. 팬들도 좋아하잖아. 야구선수도 ‘엔터적’인 게 있어야지. 홍성흔이처럼 뭔가 보여주면 팬들이 좋아하잖아.”

야구는 인생이다. 인생에도 역전이 있듯이 9회말 투아웃 때 역전의 묘미도 있고, 이기는 날도 지는 날도 있다. 삼진아웃을 가장 많이 당해본 사람만이 홈런을 가장 많이 칠 수 있다는 교훈은 실패를 통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인생의 교훈과도 꼭 닮았다.

 

 

 

-앞으로 계획 중에서 유소년 야구에 관심이 많다 했죠.

“나름 알아보고 있는데 정말 공간이 없더라. 그래도
여기저기서 도와줘서 잘될 것 같기는 하다. 당장 선진국처럼 야구장이 많아지고 인프라가 갖춰지는 걸 기대하지는 못하겠지만 나 같은 선수 출신이 그런 일을 해야 안 되겠나. 단순히 생각하면 박찬호, 이승엽 같은 야구 꿈나무들도 키워야겠지만 내 진짜 목표는 야구교육을 통해 애들을 사회의 리더로 키우고 싶다는 기다. 우리 때는 야구하면 공부랑은 담쌓고 했지만 이제는 공부하면서 청소년들도 취미로 야구할 수 있게 해야지. 애들이 공부에 치여서 시간이 안 나는데 주말에라도 좀 뛰게 해줘야 안 되겠나. 야구하면 협동정신, 예절, 팀워크지. 가르칠 게 정말 많다니까. 공부만 해라 이케 가꼬는 교육이 안 된다 이기라. 애들이 집에서 야구게임이나 하지, 동네에선 놀 데도 없잖아. 방에서 게임만 자꾸 해봐라. 애들 생각이 음지화되지.”

-맞아요.
학교 운동장도 뚝뚝 잘라놨고, 숨바꼭질이나 구슬치기 하는 애들도 없고. 결국 다 어른들이 그렇게 잘못해 놓은 거죠.

“내가 처음에 공간문제 때문에 시청이랑 관공서랑 이런 데 찾아갔는데 뭐라 하는 줄 아나? 니 ‘가오’ 세울라 카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고. 이런 공무원들이랑 마이 부딪혔지. 정말 인식이 안 돼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

-갑자기 비 많이 왔을 때 형님이 장화신고 땅고르개 들고 베이스에 고인 물 밀어내던 게 생각나요. 어찌보면 팬 서비스 차원에서 웃자고 한 일이겠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고 슬프더라고요. 프로야구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야구장 시설의 현실이잖아요. 아직도 더그아웃에 쥐 나오나요?

“얼마 전에는 로커 천장에서 고양이가 뛰어내려 오더라니까. 천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이가.”

돔구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여자축구 등록선수 몇백명 가지고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고 좋아할 것인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신화를 일궈냈다고 박수치는 건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 프로야구 시설의 현실이 이럴진대 일반인이나 청소년들이 뛰고 즐길 수 있는 야구장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더 멀게만 느껴진다.

 

▲ “공부에 치인 요즘 아이들 야구 통해 리더 만들고 싶어
당장 인프라 기대 어렵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해야지”
▲ “언제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신화를 일궈냈다고 박수칠 것인가. 그건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 - 김제동

 

 

 

 

-언제 인터뷰한 거 보니까 애들 많이 낳고 싶다고 하던데.

“내 그런 말 한 적 없다. 자꾸
결혼 이야기 물어보면 딱 짤라뿐다. ‘노 코멘트’이카면서.”

-우와, 영어도 사투리로 하네예. 와 장가 안 갑니꺼.

“니부터 가라. 니 어떻게 되나 보고 갈라꼬….”

-나는 아직 서른일곱입니다. 형님부터 가야죠.

“다들 그카면서 지 먼저 가데. 내 핑계대고. 승엽이도 그래놓고 지 먼저 가뿌고.”

 

 

 


-공개적으로 한효주씨 팬이라면서요. 만난 적 있죠?

“안 만났다. 그냥 드라마 <동이>를 열심히 보는 거지. <동이>에 숙종이 ‘깨방정’으로 많이 나오니까 나도 어떻게 엮어 볼라꼬 ‘깨준혁’이라고 이름지어 트위터에 올렸지. 내 한효주씨 사인도 받았다. 누가 받아주데. 내 이름 써갖고. 그거 받아보니 팬들이 이런 기분으로 사인 받는구나 싶데. 막 날아갈 것 같고, 힘이 솟고…. 그날 하루는 진짜 해피하더라.”

-으하하. 그래 갖고 그거 들고 시합하셨습니까?

“집에 액자해서 만들어놨지. 우울할 때 한 번씩 보면 기분이 업되지. 드라마에서 동이 아들 있잖아. 왕자. 그 아들을 보면서 나 어렸을 때 같다며 트위터에 썼는데 반응 싸늘하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카는 글이 열개나 올라오더라고. 그래서 바로 꼬랑지 내리고 급 사과했지.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카고.”

-아들한테까지 감정이입된 것 보면 중증인데요. 한효주씨 몇살인지는 압니까?

“24살. 근데 뭔 상관이고. 내 혼자 팬으로 좋아하는데 그게 뭐 어때서? 니도 내랑 비슷한 기분 알낀데…. 모르나?”

-아이고, 알아요. 됐어요. 형 은퇴식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은 은퇴식에 아들 데꼬 들어가는데 형님은 혼자 들어가니…. 형님 아버님도 많이 우셨잖아요. 물론 오랜 세월 뒷바라지 하면서 감회가 새로우셨겠지만, 며느리나 손자가 없어서 울컥하셨을 거예요.

“와? 그 모습도 안 괜찮드나? 나이든 아버지랑 같이하는 것도. 꼭 얼라나 마누라만 데꼬 드가야 되나?”

형이 생각하는 야구의 의미를 물었다. 인생이고 삶이다. 애인이고 부모고, 무한한 기쁨을 주는 절대적인 것. 삼성라이온즈 품에서 그만둬 행복하다는 형은 “참 좋은데…. 말로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면서도 주저리주저리 ‘야구예찬론’을 편다. 형이 꼽은 최고의 감격적 순간은 2002년의 우승. 나 역시 믿을 수 없어 얼굴을 꼬집으며 울던 기억이 선명하다.

“내가 삼성에 돌아왔던 해잖아. 그전에 삼성이 여덟번 결승에 올라갔어도 우승은 그때가 처음이었지. 그전에 내가 어떤 소릴 들었냐 하면 우승 시키지 못한 4번타자라꼬. 잔인한 이야기였지. 그리고 많이 힘들었잖아. 다른 팀 갔다 올 때 구단서도 98%가 반대했어. 선수협 때문에 갈등도 있고…. 우승하니 모든 게 정리되데.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하면서도 한 번도 우승 못했었거든.”

수많은 야구팬은 ‘양준혁’이란 이름 석자 때문에 즐거웠다. 물론 그가 홈런을 칠 때마다 절망했던 상대편 팬도 있겠지만…. 그가 떠나온 ‘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후배들한테 잔소리를 마이 하는데 결국은 본인이 느껴야지. 마지막 공 하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땅볼로 날아간다고 뛰다 말고 돌아오는 거, 나는 인정 안 해. 안타가 아니더라도 전력을 다하면 송구에러가 나고 그게 안타를 만들거든. 그게 진정한 프로지. 내가 나를 돕고 최선을 다해야 남도 나를 돕고 기회가 생기는 이치지. 야구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 아이가.”

카, 상투도 틀기 전에 도사 되겠다. 총각도사. 사족 한마디. 인터뷰 내내 지방색을 드러내며 ‘원어민 사투리’를 쓴 건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장치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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