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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최수종 -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본문

강사님과/스타강사/유명강사

국민배우 최수종 - [특강/강사섭외/유명인/명사]

파인드강사 2013. 2. 13. 14:11

 

 

섭외/기업특강/명사섭외/유명인 초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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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영화배우)

경력

2012.05 제1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우수인
2011.09 F1 코리아 그랑프리 홍보대사
2011.08 한우자조금 관리위원회 한우 홍보대사
2011.05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명예사회복지사
2011.05~ 전남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2010.08 기독교 사회복지 EXPO 홍보대사
2010.07~ 세계태권도대학교 설립위원회 이사장
2010.05 국세청 명예홍보위원 겸 대한민국 세미래 캠페인 홍보대사
2010.03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줄이기 캠페인 홍보대사

수상

2012 제1회 행복나눔인 보건복지부장관상
2011 KBS 연기대상 남자 특집단막극상
2011 제3회 대한민국 휴먼대상 사랑나눔상
2011 가장 문학적인 상 연예인부문
2010 제44회 납세자의 날 모범 납세자
2008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남자최우수상
2008 제35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2007 KBS 연기대상 대상
2007 문화관광부 장관상
2005 KBS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굿네이버스 친선대사 10년 최수종의 나눔 이야기

 

 

 

최수종은 한결같다. 반듯하다. 부침이 심하다는 연예계에서 20년 넘게 최고의 자리를 지켜오면서도 추문 하나 흘리지 않았다. 뚜렷한 위기도 없었고, 자잘한 스캔들조차 없었다. 톱스타지만 자신을 낮추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고 실없다 싶을만큼 잘 웃는다. 가족 생활은 또 얼마나 모범적인가.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최수종은 흥미롭지 않다.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뻔하다. 굴곡이 없기에 평면적이다. 그는 연기에서조차 변신에 인색하다. 현대극 사극 구분없이 늘 착한 주인공이다.

한결같은, 그래서 좀 지루한 이 남자가 40대 후반을 넘어서고 있다. 50대가 코 앞이다. 청춘스타 최수종은 이미 중년연기자로의 위치 변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수종이 40대를 보내며 준비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나눔이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 나누면 행복한 것을”

-지난 주 미국 LA 한인교회에서 강연을 했다고 들었다.

"LA에 가서 1주일 동안 감사한인교회 등 4개 교회를 방문해 나눔에 대한 강연을 했다. 내가 굿네이버스 친선대사인데, 거기서 미국에 지부를 만드는 중이라 도움을 주려고 간 거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제3세계 아이들 이야기 많이 했다. 그러면서 조금 나누면 같이 먹을 수 있고 같이 살 수 있다, 우리도 힘들지만 우리보다 더 힘든 아이들이 많다, 우리의 작은 나눔이 지구 반대편 아이들에게는 생명이고 기적이다, 이런 얘기들을 했다."

-굿네이버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1999년 홍보대사를 맡았다. 꼭 10년이 됐다. 이왕이면 한국인이 만든 국제NGO에서 봉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체계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그동안 같이 재난현장에 많이 다녔다. 네팔, 방글라데시, 평양 등에 가서 아이들 만나고 많이 울었다. 직접 현장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그러면 언론에서 보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라면?

"1999년 처음으로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빈민가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줬는데, 정말 어려운 사정에서도 아이들은 참 밝더라. 감동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해외에까지 나가서 도와줘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제3세계 아이들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잘 사느냐 못 사느냐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문제에 직면해 있다."

-아들 백일잔치에 결식아동을 초청한다든가 결혼기념일에 1억원을 기부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가족행사를 나눔이벤트로 만드는 게 독특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아이들로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나 수학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쳐주고 싶다. 조금 있으면 결혼기념일인데, 이번에는 화상환자들을 돕기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아내가 양초공예를 하다가 2도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화상 환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었다."

-연예인들의 나눔은 홍보 이벤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기가 가진 것의 얼마를 나누고 있다고 말하겠는가?

"내가 얼마만큼 남을 도왔다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평생을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같이 있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나눈 것이 적다. 돌아보면 교회에 10일조를 하듯 내가 가진 것의 10분의 1은 항상 기부를 해온 것도 같고, 어떤 때는 그 이상을 내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때도 많았다. 그래도 40대 들어서는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이상 꾸준히 나눔을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눔을 지속시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계기가 있었다.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꽤 유복한 생활을 했고 미국에서 유학할 기회도 얻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빚만 잔뜩 남겨놓고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이 변했다. 나는 다 포기하고 귀국해야 했다. 식구들이 모두 파라과이로 이민을 간 상태였는데 어머니도 돌아오셔야 했다. 동생 혼자만 거기 남겨놓고. 1986년만 해도 서울시내에 노숙자가 거의 없었을 때다. 그때 나는 길바닥에서 잠을 자고 그랬다. 나는 친구집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자고, 어머님은 이집 저집 전전하고."

-그때의 경험이 나눔을 결심하게 만들었나?

"매일 아버지 원망하고 하나님 원망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느날 지금의 강남터미널 앞 벤치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가 신문지를 던져주고 갔다. 새벽에 추우니까 덮으라면서. 눈을 떠서 보니까 나보다 더 남루해 보이는 어른이셨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기도가 그때 다시 나왔다.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제게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라고. 극심한 가난을 경험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해온 일들을 보면 아이들 돕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하희라씨와 결혼한 후 세 번 유산하고 6년만에 첫 아이를 가졌다. 아이가 나오는 날, 아내와 함께 분만실로 들어가는데 다른 산모의 아이가 중환자실로 실려가는 걸 봤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구나.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 그래서 아이 낳자마자 바로 아이들 돕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나이가 마흔여덟이다. 지난 20여년간 청춘스타로 군림해 왔는데 나이 때문에 고민이 되지 않나?

"역할도 줄고 할 일도 없어지는 것 같고 젊은이들한테 밀리는 것 같지 않느냐고 많이들 묻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앞으로의 일들이 훨씬 더 궁금하다. 아버지역, 삼촌역, 할아버지역이 더 흥미롭다. 모든 선배들이 다 이길을 거쳐갔다. 한진희 선배나 노주현 선배가 요즘 아버지로 나온다. 나 또한 그렇게 된다. 지금의 청춘스타들도 나하고 똑같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면 지금부터 서서히 그쪽으로 갈 거다."

-그래도 좀 서글퍼지지 않나?

"청춘스타 시절이 더 바쁠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이 더 바쁘다. 젊을 때는 연기만 했지만 지금은 봉사활동도 하고 여기저기 사회활동도 많다. 내가 국립중앙박물관 홍보대사인데 이번에 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패션쇼 무대에 선다. 얼마 전엔 연극 '대한국인 안중근'을 했고. 요즘엔 책도 많이 읽는다. 젊었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 내 나이에 맞게 새로 찾아오는 일들이 좋고 감사하다."

-만약 지금 아버지 역할이 들어온다면 오케이 하겠는가?

"당연히 그렇다. (이)덕화 형처럼 자기 나이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찾아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실 요즘 드라마를 고르는 중이다. 사극 보다는 현대극을 하고 싶다. 젊은 주인공을 한 번 더 할 수 있을 지 없을 지, 욕심을 부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연기자가 되지 않았으면 뭐가 됐을 것 같은가?

"아마도 '날라리'가 됐을 거다. 학교 다닐 때 꽤 예쁘고 곱상했으니까.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아했고. 이렇게 연기자가 돼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좋다. 우리 돈 몇백 원이 없어서 식사를 못하고 굶어죽는 아이들이 세계 곳곳에 너무 많다. 그런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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